3.jpg



[연변복지병원에 다녀와서]


입사한 이래 처음으로 가는 선교! 늦게 까지 짐을 꾸리고 아침 일찍 나와 병원 식구들과 함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내가 그곳에서 실수하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과 <그래도 무언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감과 설레임을 가지고 비행기에 올랐다. 잠을 잘 못잔 탓인지 비행기를 타자마자 잠이 쏟아졌다.


우리가 내리려 했던 공항이 군사 훈련 관계로 착륙이 불가하여 다른 공항에 임시 착륙하였다. 그리고 다시 기름을 채우고 연변공항으로 착륙 하였다. 그러는 사이 원래 도착예정 시간 보다 2-3시간 정도 늦게 연변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연변공항에서 세관을 통과 하는데 짐을 다 풀어 보라고 하는게 아닌가? 혹시 가지고 간 기구와 렌즈들을 압수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세관을 무사히 빠져 나왔다.


차를 타고 연변복지 병원으로 향했다. 연변은 중국에 있지만 우리와 한 민족이여서 인지 간판들과 익숙한 언어들이 눈과 귀에 들어 왔다. 이미 잘 갖추어진 수술실에 짐을 풀고 식사를 한 후 수요예배를 드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한 아파트에 들어가자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함께 예배를 드렸다. 낯선 땅에 와서 예배를 드리니 감회가 달랐다.


둘째날 드디어 연변복지병원 수술팀과 함께 수술이 시작 되었다. 언어가 통해서 일까? 다른 나라에 왔다는 느낌 보다 그냥 한국의 다른 병원에 와서 수술하는 느낌이 들었다.


연변의 병원은 우리나라 80년대-90년대 초반의 병원을 보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세브란스 병원에 갔을 때 제중원의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그 작고 초라한 병원이 지금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병원이 되어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복음의 빚을 지고 사랑의 빚을 졌구나.. 그리고 그 작은 병원을 하나님께서 이렇게 크게 키우셨구나..


10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우리는 그 사랑을 다른 나라에 흘려보내고 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젠가 이 연변 복지병원도 세브란스 병원처럼 성장 하겠지... 이 씨앗이 얼마나 귀한지.. 이곳에 내가 와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그런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하나님, 아프리카와 같이 힘들고 가난한 곳에 나를 보내 주세요. 그 땅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그렇게 기도 했다는 사실 조차 잃어버리고 있었는데.. 이곳에 와서 그때의 기도가 생각났다. 그때의 마음이 생각났다.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 지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잊어 버리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나의 기도를 잊지 않고 계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고 계셨다.


그렇게 셋째날 마지막날이 지나갔다.


언제 나는 또 이 연변 땅을 밞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10년뒤 나는 또 어디에 서 있게 될지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나는 소망한다.


내가 서 있게 될 그 땅에 하나님의 복음을 가지고 서있게 되기를.. 내가 서있게 될 그땅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있게 되기를..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늘 기도하며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를 살아 낼수 있기를...


연변은 내가 어릴 적 하나님을 열정을 다해 사랑했던 그 날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다시금 내가 무엇을 위해 나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주었다. 이런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과 병원에 감사드린다.




로고.jpg